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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 속 약사의 존재감, 어디까지 왔나
의약분업이 시작된 2000년, 약국은 한 차례 거대한 변화를 맞이했다. 25년이 흐른 지금, 또 다른 변곡점에서 약국은 다시 한번 전환기를 맞고 있다.
한때 동네 주민의 건강과 일상을 함께 나누던 ‘사랑방’이었던 약국은 이제 전산화된 조제 공간으로 변모했으며, 비대면 진료, 약 배달, 약자판기 등 새로운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2000년과 2025년의 약국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2000년 ‘사랑방’ 약국의 기억
의약분업 이전의 약국은 단순한 약 조제 공간이 아니었다. 주민들은 건강 상담을 위해 수시로 약국을 찾았고, 병 이야기뿐 아니라 집안일, 고민까지 터놓는 지역 공동체의 중심지였다.
인천에서 50년 넘게 신흥약국을 운영 중인 김연옥 약사는 “예전에는 사람들이 북적이고, 자연스럽게 상담도 하고, 일상을 나누는 공간이었다”고 회상한다. 서울 성동구에서 약국을 운영해온 김영식 약사 역시 “약국은 건강을 지키는 공간이자 이웃과의 연결 통로였다”고 말했다.
당시 약사는 단순히 증상만 듣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가족사, 생활 패턴, 경제 상황까지 고려해 약을 조제했다. 지금처럼 단편적인 처방전 기반 조제가 아닌, 맞춤형 복약지도가 가능했던 시기였다.
의약분업이 가져온 극적인 변화
2000년 전면 도입된 의약분업은 약국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진료와 조제를 명확히 분리하며 약사는 의사의 처방을 기반으로 조제만을 담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행 초기에는 대혼란이었다. 병원과 약국 간 의약품 목록 공유 시스템이 부족해 약을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고, 약국에는 처방약이 준비되지 않아 환자들이 발길을 돌리는 일이 속출했다.
당시 많은 약사들이 “처방전에 쓰인 약을 구하지 못해 도매상에 빌려가며 조제했다”고 회상한다. 제도뿐 아니라 기술적인 전환도 함께 이루어져, 기존의 수기 방식에서 전산 시스템(PM2000 등)으로 업무 전환이 이뤄졌다.
김영식 약사는 “컴퓨터 부팅부터 전산 프로그램 사용법까지 일일이 교육받으며 적응해야 했다”며 “기술을 따라가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컸다”고 말했다.
디지털 전환, 조제 중심 공간으로 바뀐 약국
의약분업 이후 전산화는 빠르게 확산되었고, 약국의 모습도 변화했다. 처방전 기반 조제는 일상화되었고, 약사는 환자와의 접점보다는 처방 조제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됐다.
그 결과 약국은 점점 ‘복약설명소’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환자는 단순히 약을 수령하는 공간으로만 약국을 인식하게 되었다.
김연옥 약사는 “전산화 이후 업무 효율은 높아졌지만, 환자와 나누던 깊이 있는 상담은 줄어든 것이 아쉽다”고 했다. 김영식 약사는 “약사의 건강지킴이 역할이 희미해지고, 처방 중심 수익구조 탓에 일반약·건기식 지도 등 전문성이 묻히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미래형 약국, 다시 중심에 설 수 있을까
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 등 디지털 의료 서비스가 현실화되는 지금, 약국은 다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약사가 단순히 처방 조제에 그치지 않고, 환자의 삶과 건강을 책임지는 본연의 직능을 되찾기 위한 논의가 절실하다.
과거 ‘사랑방’으로서의 약국이 지녔던 따뜻한 역할과, 현재의 디지털 조제 환경을 어떻게 접목해갈 것인가. 약사의 미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